> 자유민주상 시상> 역대수상자
구분 년도 민주통일부문 사회봉사부문
1회 1997년 이돈명 변호사 한국여성단체연합
2회 1998년 이문영 박사 조아라 여사
3회 1999년 김관석 목사 여성숙 선생
4회 2000년 송건호 선생 월드비젼/대표 : 오재식회장
5회 2001년 한승헌 변호사 김옥라 선생
6회 2002년 박용길 장로 한국기독교교회 협의회 인권위원회
7회 2003년 민가협 허병섭 선생
8회 2004년 한민족복사재단 애광원
9회 2005년 김필주 한국가정법률상담소
10회 2006년 법타 스님 (사)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 운동
11회 2007년 김진경 총장/연변과 기대 우총평 원장/프란체스코네 집
12회 2008년 김동완 목사 사단법인 국제사랑
13회 2009년 정경모 선생 박재일회장
14회 2010년

안현수목사

김영백선생
15회 2011년

김종완 전 국회의원

가나안 농군학교
16회 2012년 김용덕 장로

대한민국특수임무공자회 중구지회

17회 2013년

故장준하 선생

사단법인 소비자시민모임
18회 2014년

이해동 목사

김현승박사
19회 2015년

평화네트워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20회 2017년

이승환(현) 민화협공동의장

사단법인 남대문지역 상담센터
21회 2018년

안찬일

(사)서울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중구지부 파란마음주간보호센터(센터장 김경일)
22회 2019년

태영호 공사

문장식 목사
 
 

태영호 공사 (제 22회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 민주·통일 부문)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2016년 여름 자유와 평화통일을 위해 한국으로 망명 하였습니다. 한국 입국 후 수많은 강연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데에 앞장서고 있으며 국내외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북미 정상회담, 남북 정상회담, 북중 정상회담 등 한반도를 둘러싼 급격한 정세 변화에 대해 분석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술, 강연, 개인 블로그 운영, 국내외 언론사 인터뷰, 남북동행아카데미 원장 활동을 통해 북한을 올바로 알리고 통일을 앞당기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현재 남북동행아카데미 원장으로 한반도의 미래 지도자가 될 동량을 키우는 아카데미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반도 분단부터 북한 인권문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 향후 통일 전후과정에서의 과거사 청산, 남북사회 통합 등 폭넓은 내용에 대해 강의와 토론을 통해 남북한 출신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고 통일에 대한 비전을 심어주어 향후 한반도를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 양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2017년 11월 미국회 상하원 북한인권 청문회에 참가하여 북한의 핵개발전략과 인권유린실태를 폭로하였고 2017년 12월 국회인권포럼·아시아인권의원연맹으로부터 ‘2017년 인권상’을 수상 받았으며 2018년 9월 북한의 반인권적 실상을 세계에 알리고, 탈북 이후에도 북한 인권 개선에 노력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으로부터 제1회 북한인권상을 수상하는 등 평소 우리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위한 의지와 헌신을 보여주고 있기에 그에게 자유민주상 민주·통일부문의 수상이 작은 격려가 되기를 바랍니다.

 

문장식 목사 (제 22회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 사회·봉사 부문)

문장식 목사는 1983년 서울구치소 소장의 종교위원 위촉을 받아 지난 서울구치소책임지도 목사로 봉사하면서 사형제도가 지닌 야만성과 비인간성을 없애고자 1989년 서성운 스님, 이상혁 변호사, 추영호 신부 등 함께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를 창립하였고 1993년 NCCK 인권위원회 사형폐지 소위원회 조직, 사형폐지 위원장을 역임 하였습니다.
2001년 4월 27일 한국기독교사형폐지운동연합회를 창립하여 현재까지 대표회장을 역임 하면서 사형폐지 운동을 주도하였고 이러한 그의 노력으로 1997년을 마지막으로 2019년 현재까지 사형집행을 중단하면서 대한민국은 국제사회로부터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잃은 양 찾아 나선 목자, 즉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재소자를 대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36년간 재소자 교화위원(법무부 교정위원)으로 활동하여 약3,000명의 수용자를 대상으로 수용자 정신교육을 통하여 참다운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하였습니다.
또한, 교도소 출소자 중 의탁할 곳이 없는 사람을 위해 태양의집을 설립하여 출소자의 구직활동을 지원하고 결혼식을 지원하며 극빈자 구호 등 지역사회봉사활동을 인정받아 서울특별시장 표창을 받았습니다.
이밖에도 1969년 1월 사단법인 한국기독교의료선교회 창립 발기인으로 상담지도 목사로 매주 1회씩 의사들과 극빈자를 위한 무료진료사업을 하였고 2019년 현재 북한 결핵어린이 등과 세계 빈곤층 찾아 돕고 있는 국제사랑재단 공동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사회부장, 인권 위원장, NCCK 인권위원장 등 여러 부서장을 역임하면서 사회봉사와 인권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문장식 목사를 자유민주상 사회·봉사 부문에 선정 하였습니다.

 
 

안찬일 (제 21회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 민주·통일 부문)

안찬일 박사는 1979년 DMZ을 넘어 탈북한 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 정치학 석사 취득, 건국대학교 정치학 박사 등 14년 동안의 학업 끝에 탈북민 중 최초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현재까지 남북통을을 위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1,000회 이상의 통일안보강연을 통해 국민들과 청소년들에게 통일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설파하였으며, 지금도 방송 출연 등을 통해 활발한 통일 분위기 조성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탈북민 출신 학자 20명과 함께 학술회의, 저술활동 등 다수의 종합 북한연구 서적을 출판하였으며, 3만 명의 탈북민의 권익과 인권 실현을 위해 미국과 일본, 중국 등을 오가며 탈북자들의 자유와 인권을 찾아주기 위한 노력(미국북한인권위원회 활동, 중국내 탈북자 구출 홛동 등)을 20여 년 동안 꾸준히 진행해 오면서 수많은 탈북민 구출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탈북민들의 학업 및 일자리 지원 등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도 안찬일 박사는 '통일은 탈북민들의 적극적인 통일운동 참여와 솔선수범으로 이루어낼 수 있다'고 강조하는 등 우리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위한 운동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헌신을 보여주고 있기에 그에게 자유민주상 민주·통일 부문의 수상이 작은 격려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서울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중구지부 파란마음주간보호센터(센터장 김경일) (제 21회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 사회·봉사 부문)

파란마음 주간보호센터는 2009년 1월 발달장애인의 권익을 옹호하고, 교육 지도함으로써 이들이 국가와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립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더 나아가 사회빌반의 인식과 관심을 제고 시키는 등 발달장애인의 복지증진을 위하여 설립되었습니다. 소규모 시설 운영 후원자발굴의 어려움과 재정상의 열악함을 극복하고 지역사회의 연계를 통해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발달장애인들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및 체육활동과 문화 예술 활동지원의 기회를 제공하여 성장할 수 있는 발판 마련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현재 '음악치료, 미술치료, 놀이치료' 등 치료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학습동아리 'Touch Touch' 스마트한 의사소통을 진행하며 서울시 중구 내 장애 자녀를 둔 부모와 자녀 및 협회 회원들과 함께 지속적인 교육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2009년부터 현재까지 서울특별시장애인체육회 생활체육지원사업(음악줄넘기, 플라잉디스크, 커롤링 등) 선정 및 운영과 서울지적장애인농구대회 참가, 서울시 지적장애인 문화체육한마당대회 참가 등 다양한 체육행사 운영 및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사회에 사회적 약자인 발달장애인의 권익과 자립을 위해 애쓰고 있는 '파란마음주간보호 센터'를 자유민주상 사회·봉사 부문에 선정 하였습니다.

 

이승환 (제 20회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 민주·통일 부문)

이승환은 1978년 유신반대시위를 시작으로 세 번에 걸쳐 구속되는 등 39년째 이땅의 민주화와 남북통일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 그는 통일운동만이 아니라 시민운동, 평화운동 등 포괄적인 운동을 추구해왔다. 통일운동이라는 것은 분단극복운동의 일부분일 뿐이고, 시민운동이나 평화운동 또한 분단극복의 시야를 갖지 않으면 본연의 운동적 사명을 다하기 어렵다고 주장해왔다. 또 그가 분단극복운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남쪽만이 아니라 북한까지 포함한다. 그는 '남북을 넘나들며' 분단과 싸워온 사람이다.
그가 가장 헌신한 분야는 우리사회의 각계를 망라하는 대중적 통일운동의 조직화였다. 보수·진보 시민사회와 여야 정당이 망라된 대표적 통일운동체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를 만드는데 앞장섰으며,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종교계와 시민사회, 진보세력 등을 망라한 '6.15공동선언실천천남측위원회'(초대 대표 백낙청)를 결성하고 집행위원장을 맡아 남북 민간교류를 이끌고 있다.
그는 한반도평화를 위한 민간외교관으로서의 역할도 실천해왔다. 미국사회의 여론 변화를 위해 미국 의회와 한국 시민사회의 교류프로그램인 '워싱턴 한반도 평화포럼'을 개최하였으며, 광복 70년을 맞는 해에는 한국전쟁 종식, 핵없는 아시아, 일본 평화헌법 수호 등을 내건 '2015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를 조직하였다.
이 상이 분단과 싸우는 한 길을 묵묵히 걸어온 그에게 작은 격려가 되기를 바란다.

 

(사)남대문지역상담센터 (제 20회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 사회·봉사 부문)

남대문지역상담센터는 서울의 도심인 서울역에 인접되어 780세대가 몰려있는 쪽방촌에서 19년째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쪽방촌은 1960년대식 노후건물을 0.5~2평의 쪽방으로 개조하여 건물 당 평균 40개 이상이 있으며, 일일노동자 등 최저소득층의 사람들이 일세, 월세로 생활주거지로 사용하고 있다. 쪽방 주민들 대부분은 일거리가 없어 노숙자로 전락될 가능성이 60%나 되는 잠재 노숙자들이고, 독거 노인이 180여명이며, 또한 병원진료를 받지 못하고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쪽방주민들은 부엌시설이 없어 쪽방 내에서 취사를 하고, 세면, 세탁은 상담센터에서 운영하는 공동세면실과 공동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다.
상담센터는 세탁서비스와 목욕서비스를 매일 실시하며, 이미용서비스 및 의류지원서비스, 생활필수품 지원서비스는 물론, 신용회복사업, 취업연계사업을 통하여 주민들이 자랍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있으며, 또한 집수리, 방역 및 임대주택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 주민들의 건강을 위하여 양방진료, 방문간호 및 건강검진과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 위하여 주민들의 조직화와 주민역량강화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상담센터는 쪽방지역의 주민들이 더 열악한 상황으로 내려가지 않고, 보다 나은 내일을 소망할 수 있도록 복지서비스와 자활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해동 목사 (제 18회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 민주·통일 부문)

1934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이해동 목사님은 한국 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목포 향도교회 전도사를 시작으로 일평생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오셨다.
또한 이해동 목사님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 오셨다. 특히 1976년, 초헌법적 긴급조치로 말미암아 무거운 침묵이 강요되던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하여 영어의 몸이 되는 고통을 감내하시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이해동 목사님께서는, 대표적은 공안조작사건으로 일컬어지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관련되어 또다시 독재 권력의 탄압으로 투옥되셨지만 60여일간 진행된 군부독재정권 하수인들의 모진 고문과 협박도 목사님의 의지를 꺾지 못하였다.
칠흑같이 어두운 긴 터널에서 어느 누구도 감히 희망을 얘기하지 못할 때 분연히 일어서 우리사회와 민족이 나아갈 길을 가리키셨고, 민주화를 이끈 선도자 분들과 함께, ‘역사는 느리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며, 고통스럽지만 결국 옳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셨다.
이 자리를 빌어 어둡고 왜곡된 우리 현대사의 회오리속, 한복판을 걸어 오셨지만 한평생 스스로를 낮추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랑과 평화실천의 외길을 걸어오신 그 뜻을 기린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11:1)』 - 이해동 목사 설교 문집 中

 

김현승 박사 (제 18회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 사회·봉사 부문)

경기도 파주에서 출생하신 김현승 박사님은 심장내과 전문의로서 평생을 의학과 환자들을 위해 헌신해 오셨다.
김현승 박사님은 2007년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장으로 취임하여 낙후된 시설과 노사분쟁 등으로 만성적자에 허덕이던 파주병원을 각고의 노력 끝에 경영정상화로 이끌었으며, 또한 파주병원 자원봉사단을 구성하여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외국인근로자, 불법체류자, 국적미취득 결혼이민자 등에게 월2회 휴일을 이용하여 무료진료 봉사활동을 실시하는 등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는 노숙자 등 소회계층에 대한 의료안전망 마련에 힘써오셨다.
또한 의료서비스를 받기 힘든 민통선 내 주민과 오지마을에 대한 무료진료 봉사활동을 펼치고 계시며, 개성공단 내 남측 근로자들에게 무료진료를 실시하고 북한의료진에게 의료기술 전수하는 등 남북관계 개선에도 앞장서고 계신다.
2010년부터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의료봉사에도 나서 세계최빈국으로 한국 국제협력단(KOICA) 지원대상 국가인 캄보디아를 시작으로 카자흐스탄, 네팔, 러시아 사할린 등에 매년 의료봉사단을 보내어 국경을 초월한 의술을 베풀고 계신다. 살아오신 일생을 통해 생명의 존귀함과 사랑을 바탕으로 진정한 봉사의 의미를 일깨워주시는 김현승 원장님의 발자취를 기리며 이 상을 수여한다.

 

故 장준하 선생 (제 17회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 민주·통일 부문)

고 장준하선생의 삶은 우리 민족 현대사의 아픔 구 자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선생은 일본군에 징집되신 후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이 되었다. 국내로 잠입하는 특수임무를 자임하여 OSS특수훈련을 받았으나 일본의 항복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해방 후 잡지「思想界」를 창간하여 이승만정권의 부패와 무능을 용서하지 않았으며, 국민의 인권과 자유를 짓밟는 독재에 정면으로 대항하였고, 이는 4.19 민주혁명을 이끌어내는 등불이 되었다.
박정희군사정권의 폭압적 독재는「思想界」의 펜으로만 대항할 수 없었다. 장준하선생은 국회의원, 재야지도자로서 자유와 민주주의와 통일로 가는 길을 이끄셨다. 군사정권의 부정과 부패를 폭로하였고, 청년들에게 정의의 길을 가르쳤으며, 진정한 통일의 길이 무엇인지를 절규하며 제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끌려감과 구속이 반복되었다. 그랬기에 개인적으로는 가난과 싸워야 했으며 가족들의 삶은 곤궁했다.
독재의 절정이었던 유신헌법을 개정코자 100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결국 의문의 죽음을 당하셨으나 사후 37년 만에 자신의 몸을 증거로 내놓아 ‘암살’임을 밝히게 되었다. 민족의 아픔과 함께 하며 역사의 어둠을 걷어내려 온 몸을 불살랐던 장준하선생의 삶은 오늘날에도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어 우리의 갈 길을 비추고 있고,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말씀은 우리의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사)소비자시민모임 (제 17회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 사회·봉사 부문)

사단법인 소비자시민모임은 ‘소비자’라는 말과 ‘소비자권리’라는 말조차 생소하엿던 1983. 1. 20 소비자 문제의 조사연구와 시민들의 자발적인 소비자운동을 통하여 소비자 주권을 확립하기 위해 창립되었습니다.
창립이래 소비자의 안전성 확보, 정보에 기초한 소비자의 선택을 돕기 위한 공정시장확립, 소비자 피해예방, 환경자원보전을 위한 지속가능한 소비자 영영의 개척 등 전방위적이고 다방면에서 시민운동을 전개하여 왔다. 소비자 시민모임은 착수하는 분야마다 탁월한 업적을 쌓아왔고, 30여년에 걸친 활동은 국내에서 식품안전과 의약품안전분야에서 대표적인 소비자운동단체로 인식되는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30여년의 소비자 시민모임의 업적은 이 짧은 지면에서 일일이 기록·거론하기 어려운 정도이나, 모유권장, 식수안전, 수입식품안전감시, 부정불량식품추방, 유권자조작식품에 대한 표시 의무화, 백화점사기세일 집단소송의 승소, 약관규제법 입법화, 아파트분양가 인하운동 등은 특기할 만합니다.
소비자 시민모임의 이러한 지칠 줄 모르는 활동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아 CI(Consumers International) 이사단체이며, 2004년 창간된 ‘소비자리포트’는 현재 통권 84호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용덕 장로 (제 16회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 민주·통일 부문)

김용덕장로님은 1996년 북한의 기아사태를 보시고 북한 돕기 사역을 통한 평화사역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총 5만여 톤), 특히 북한 어린이시설에 대한 지원은 물론 탈북아동에도 관심을 가지시고 수십 명의 아동을 입국시키기도 하셨습니다. 또한 중국 연길교회건축, 평양 봉수교회 재건축 등 종교 활동을 통한 평화구축에도 노력하셨습니다.
남북통일과 북한에 대한 선교를 민족적과제로 여기시고, 효율적이고 지속적인 대북선교와 인도적인 지원 사업을 통하여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화해와 협력을 도모하여 조국의 평화통일을 이루는데 기여하시기 위하여 (사)기쁜소식을 설립하고 지속적인 대북선교사역을 펴나가고 계십니다. 이를 기려 이상을 수여합니다.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제 16회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 사회·봉사 부문)

특수임무유공자회는 현대사의 아픔으로 남아있는 북파공작원분들의 단체로서 사회적 무관심속에 대부분의 회원들이 사회적 부적응자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특수임무유공자회 중구지회는 2008년부터 전 회원들이 뜻을 모아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고자 청소년선도사업을 시작으로 다양한 봉사활동을 전개하였으며, 특히 자전거 무료수리센터를 운영하며 어려운 이웃에게 1,300여대의 자전거를 기증하는 등 지역주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지역봉사활동이 중앙언론 등에 십수번 소개되었을 뿐 아니라, 구청에서도 선행을 기리고 이들의 활동을 장려하기 위하여 본 기념사업회에 적극 추천을 하여 이 상을 수여합니다.

 

김종완 전 국회의원 (제 15회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 민주·통일 부문)

김종완 전 의원님은 해공 신익희 선생의 비서, 정일형 박사, 김대중 총재 등 세 사람의 정치지도자 밑에서 36년간 야당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 군사독재에 민주헌정연구회, 민주화추진협의회, 민주인권연구회를 창립하여 민주화와 인권회복을 위해 반독재 투쟁을 하며 5차례의 투옥과 4년 8개월간의 영어(囹圄)생활 그리고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중앙정보부에 구속 수감되어 숱한 고초와 시련 속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맞서 싸워왔습니다.
김종완 의원님은 평생 반독재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투쟁을 일관하며 1987년 민주화추진협의회에서 민주공로패를 수상하였습니다.
야권이 분열할 때 마다 “야권통합은 절제절명의 과제입니다. 국민은 수권태세를 지닌 강력한 야당을 원하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야권통합이 시대의 대의(大義)임을 믿고 야권통합의 후견인으로 큰 역할을 담당하여 이상을 수여합니다.

 

가나안 농군학교 (제 15회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 사회·봉사 부문)

가나안 농군 학교는 1954년 11월 지금의 경기도 하남시 풍산동에서 1만 여 평의 땅을 기반으로 가나안농장을 시작하였습니다.
가나안 농군학교는 근로, 봉사, 희생의 교육이념을 바탕으로 성인교육과정, 청소년교육과정, 효도교육과정, 외국인교육과정을 병행하고 있으며 개교 이래 배출한 수료자는 70여 만 명에 달하며 해외로도 가나안 정신을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의식을 개혁하고 경제적 자립모델을 제시하는 가나안운동이 새마을 운동으로 발전하여 우리나라의 절대빈곤을 극복하게 됐던 것처럼 가나안 운동은 종교, 이념, 국가, 인종에 상관치 않는 농업을 통한 잘살기 운동과 의식을 개혁하여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는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습니다.
민족의 정체성과 발전하는 경제 속에 진정한 가치는 이 땅과 더불어 성장하고 발전해야 하고, 모든 것의 밑받침은 농촌을 기반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한 것을 인정하여 이 상을 수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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