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법률가들 3. 이태영 변호사님]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07-20 14:43     조회 : 315    
진혜원 검사 페북글입니다^^

[위대한 법률가들 3. 이태영 변호사님]

이태영 변호사님은 1914년 평안북도에서 태어나, 사회운동을 하던 정일형 박사님과 결혼 후 서울로 내려와 이화여대 가정과를 졸업하셨고, 이후 박사님의 응원으로 33세의 늦은 나이에 서울대 법학과에 진학했는데, 서울대 최초의 여학생이었습니다.

변호사님은 6. 25.가 한창이던 1952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최초의 여성 법조인이 되신 후 당시 대법원장이던 가인 김병로의 제청으로 판사 임용을 지원했으나, 여성이라는 이유 등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거부하자 여권운동에 헌신하는 법률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이후 여사님은 민주화운동에도 깊이 관여하면서 1977년 빨갱이로 몰려 실형을 선고받고 3년간 변호사 자격이 박탈되기도 했으나, 이에 굴복하지 않고 더 격렬한 사회운동가로 변신하여 인권과 노동권 관련 각종 행사와 집회에서 찬조 연설을 하는 등 최초의 여성 법률가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하셨습니다.

한편, 변호사님은 단순히 사회활동만 하신 분은 결코 아니었고, 3녀 1남, 특히 16대까지 5선에 걸쳐 국회의원을 역심하신 정대철 의원님 등 자녀분들을 훌륭하게 길러내신 '우리 시대의 어머니'이시기도 했습니다.

당시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 정권이 사람을 아무나 잡아다가 고문하던 시절이었는데, 변호사님과 박사님은 일찍부터 김대중 대통령님의 지지자이자 후원자로서, 이희호 여사님과도 깊은 인연이 있어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사님이 특히 일관되게 주목한 것은 '민법개정운동'으로서, 여성에 대한 법률적 차별이 곳곳에 산적해 있던 민법 각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대충의 내용의 아래와 같습니다.

 ① 부(夫)의 전처 소생 자녀나 혼인 외 출생자와는 계모 및 적모관계가 친자와 동일하게 인정되는 반면 그 반대의 경우는 성립되지 않는 점, ② 친족범위에 있어 부측을 처측보다 광범위하게 규정한 점, ③ 처가 부의 혈족 아닌 자식을 입적시키려 할 때는 부가(夫家)의 호주 및 부(夫)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만, 부(夫)가 혼인 외 출생자를 입적시킬 때는 처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은 점, ④ 여호주는 호주 상속할 양자를 입적할 때에는 호주권을 내놓아야 하고, 여호주가 혼인하면 폐가를 해야 했으며, ⑤부부동거 장소를 부(夫)의 주소나 거소로 지정했으며, ⑥자녀에 대한 친권행사자는 부를 우선으로 하고 모를 이차적으로 했고, ⑦ 부부 각자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각자의 특유재산으로 인정하나 소속이 불분명한 재산은 부의 특유재산으로 추정했습니다.

상속과 관련해서는,①혼인한 딸은 재산상속에서 제외되었고, ②남편은 처의 재산을 직계비속과 공동 상속하지만 처는 부의 재산을 직계비속 및 부의 직계존속과 공동 상속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③ 함께 재산을 일군 처의 상속분이 호주 상속보다 적고, 직계비속 및 부의 직계존속과 균등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위와 같은 문제가 하루아침에 수정되지는 않았지만 1977년, 1989년, 꾸준히 민법이 개정되고, 1997년도에는 헌법재판소에서 '동성혼금지' 규정의 위헌성을 확인받는 등 꾸준히 성과를 거두고, 여성들의 자각을 일깨웠습니다.

최종 성과는 여사님께서 별세하신 1998년 이후인 2005년 강금실 장관님이 법무부의 수장으로 계시는 동안 '호주제' 전체를 폐기하고, 각 개인별로 가족관계를 등록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부부가 서로 평등한 법률관계를 형성하도록 편제됨으로써 완성됐습니다.

이태영 변호사님은 간단한 페이스북 글 하나로 축약하기는 너무나 송구스러울 정도로 많은 업적을 달성하신 "위대한 '쎈 언니'"이십니다.

워낙 변호사가 없던 시절이어서  혼자만 생각하면서 잘 먹고 잘 살 수도 있었지만 국내에서 차별받는 모든 여성들을 위해 60년 이상 가족법 개정 운동을 추진하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실질적 법치주의 실현을 위해,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매진하신 '아름다운 어머님'이시기도 합니다.

법률가로서 이태영 변호사님께서 분투하신 혜택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대한민국의 모든 여성들이 받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개인적으로도 얼마나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한 활동을 여성 법률가이신 강금실 장관님께서 완수해 주셨다는 점 또한 감개무량하고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울러 여사님은 연령과 시기에도 불구하고 '꿈을 펼치기에는 어느 때도 늦지 않았다'는 이상을 직접 실천해서 보여주신 점, 변호사 자격 박탈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와 실질적 법치주의 실현 필요성에 대한 음성의 톤을 낮추지 않으셨던 점 등에서 '여성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독립한 인격체로 대등한 의사소통의 상대방이다'라는 이상을 대한민국의 모든 여성들에게 각인시켜 준 선구자적 인물이기도 하십니다.

첨부 자료는 '영원한 쎈 언니'이자 진지한 법률가였던 이태영 변호사님의 강인한 모습이 담긴 사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