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일형박사 > 생애의 업적 출생 및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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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 정일형 박사는 1904년 4월8일 (음력 2월 23일)황해도 안악군 대행면 저도리에서 정기찬과 한씨 부인 사이에 외아들로 태어났다. 

정일형 박사는 의병대장 집안의 손자로 태어나 저도리 섬마을 모든 사람들의 귀여움과 축복을 받고 자랐으나, 사재로 수백의 의병을 양병하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시고, 아버지마저 장질부사로 돌아가시게 되면서 극도의 비운 속에서 자라나게 되었다.  어머니와도 생이별을 하면서 극한 상황의 나날을 보냈지만 역경과 비운의 유년 시절의 경험은 박사 생애의 큰 힘이 되어 주었으며 믿음이 싹트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정일형박사는 1910년 어머니의 주선으로 기독교계통 사립학교인 삼존학교에 입학하면서 기숙사 생활을 하였고, 비로소 신학문과 기독교 신앙을 접하였다. 

그러나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던 이 학교는 작문시간에 조선의 독립에 관한 글을 짓게 한 것이 문제가 되어 많은 선생님들, 그리고 상급반 학생이 전원이 체포되어 진남포 감옥으로 끌려가고 학교는 폐쇄되었다. 

그 후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의부(義父) 김용겸 전도사의 사택으로 들어가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으나 이마저도 김용겸선생의 갑작스런 별세로 박사는 남은 가족과 함께 진남포로 귀환하였다. 

이후 어머니와 진남포 덕동교회 최병훈 목사의 권유로 최재환 선생을 비롯하여 홍기근 교장, 홍기주, 조두식 선생 등 쟁쟁한 애국지사들이 교편을 잡고 있던 삼숭학교로 옮겨 1년을 공부한 후 1917년 졸업하고 그 해 광성고등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하여 ‘평양 유학’생활을 시작하였다. 

정일형박사가 광성고등보통학교 3학년 재학 중이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다. 

정박사 역시 다른  학생들과 함께 3월1일 평양 남산현교회에서 개최된 독립선언식과 이어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석하였다.  현장에서 체포되어 1주간 경찰서에서 유치 생활을 하고 석방되었다. 

정박사가 평양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체포되어 유치장에 들어갔다.  석방되어 진남포에 내려와 있던 중 최병훈 목사의 부탁을 받고 상해 임시정부 기관지 배포운동에 참여했으며 이로 인해 다시  체포되어 한달간 구류생활을 하였다. 

그런 가운데 1920년 광성고등보통학교 문이 열려 중단했던 학업을 계속하였고 1922년 3월 졸업한 후 서울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하였다.  연희전문 시절 진남포 모교에서의 야학활동과 민족주의 운동으로 인해 구금과 석방이 이어졌다. 

연희전문대 시절 김창조, 김근배 등과 함께 ‘연희순회강연’을 조직하여 지역을 순회하며 전도와 농촌계몽강연을 하였고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할 무렵 미국유학으로 진로를 잡아나갔다. 

정일형 박사는 1929년 2월 일본을 거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오하이오 웨슬리안대학에서 시작한 유학생활은 평양유학이나 서울 유학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문화와 문명의 체험이었다. 

웨슬리안대학에서 1년간 공부를 한 후 뉴욕신학교에 입학, 종교교육을 전공하였다.  미국 정치와 경제, 학문의 중심지 뉴욕으로 옮긴 정박사는 그곳을 중심으로 형성된 재미 한국인 유학생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한국인 유학생회 북미지부 서기를 역임하였고 한인 유학생 잡지 편집인으로 활동했으며 유학생들의 영문 기관지에 ‘보다. 위대한 조국’ 건설을 위한 ‘교육 보강’과 ‘농촌 구제’ 그리고 ‘정신적 지도력 향상’이라는 내용의 글을 실었다. 

이 세가지는 이 후 전개된 정일형 박사의 학업과 목회, 그리고 사회활동의 이념적 방향과 내용이기도 하다.  1932년 12월 뉴욕신학교를 졸업하면서 종교교육학 학사 학위를 받은 후 계속해서 시라큐스대학과 오번신학교에서 1년 공부한 후 종교교육 석사학위와 철학박사학위를 받고 1935년 12월 고국을 떠난 지 6년만에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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