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일형박사 >추도의글
[ 조사  /  조가  /  축도 고정박사 삼오제에 추모시 강연 ]
 
『 조   사 』
백낙준 박사 (김원만 선생 대독)

금연 정일형 박사께서 홀연히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천수를 다하시고 당신의 나라를 찾아 가셨기에 축복해 드려야 할 뿐 인간지정의 슬픔을 나타낼 일이 아닙니다만, 그분이 우리에게 보이고 가신 생애가 의연하고, 특히 나와 오랜 세교를 통하여 보여준 인품이 고매하여 비보에 접한 순간, 가슴이 내려앉는 충격을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정박사는 나의 연하후배이지만, 나는 평소에 정박사에 대하여 외경스러운 마음을 가져왔습니다.

일제치하에서 왜인들의 혹독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항일 독립의 길을 꿋꿋이 걸어왔고 해방이 되어 모두가 광복의 기쁨에 들떠있을때 그분은 정부수립까지 험난한 도정을 예견하고 미군저의 인사행정처장과 물자행정처장을 맡아 우리 정부의 골격을 짓는데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해방된 날로부터 3년이 걸려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특사단 일행으로 '파리유엔총회'에서 우리 정부 승인을 받는 대업을 이룩하신 그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정일형박사는 그 이름이 빛날 건국공신 가운데 한 분입니다.

제 2국회 때부터 그 후 27년간에 걸친 8선 의원으로서 정박사가 보여주신 의정활동은 한마디로 우리 헌정사의 귀감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오랜 야당생활을 통하여 그분이 보여주신 지절과 투지에 대하여는 긴말이 필요는 것이고 복잡다단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굽히거나 흔들리는 일이 없이 오직 한 길을 걸어오신 모습은 참으로 처연하고 장엄했습니다.

난 정박사야말로 외유내강한 지사이며 자제자절한 신사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당 집권당시 외무부장관으로서 우리나라의 국제적 지위를 향상시키던 당시 그분의 위국위민정신을 가까이서 지켜본 바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민당 선거대책 본부장으로서 평화적 정권교체만이 이땅의 민주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하시던 정박사의 모습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뜻을 거듭 살필 수 있었습니다.

정박사는 특히 이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으로서, 남북통일을 그 누구보다도 갈망하는 분이었습니다.

금연 정일형 박사!
박사의 생전 공적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가까. 이제 다만 어수선한 세상에 우리를 남겨두고 가시는 박사의 승천의 길에 평화와 영광이 있으시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미망인 이태영 여사와 영식 대철군이 박사의 유지를 이어 나갈 터이니 부디 편히 잠드소서

오호라, 정일형 박사.

TOP
『 조   가 』
김응주 작사/ 이유희 작곡
1. 새벽종 치던 그이, 한밤중에 떠나셨다.
캄캄한 이 밤중에 길을 잃은 사람들아,
나라 찾아 감옥하고, 자유찾아 오직 한길
그 모습, 그 한뜻을, 우리 어이 잊을소냐.

2. 폭풍우 몰아쳐도 가는 길을 바로 갔다.
이세상 어지러워 주저 앉은 사람들아
총칼 앞에 웃으면서 민주 외쳐 오직 한길
그 음성 그 얼굴이 오늘따라 선명하네

후렴
기도마다 나라 겨레
미소짓고 포효하던
우리 박사 정박사, 그 이름 영원하리
TOP
『 축   도 』
임순만 목사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신의 감화 감동하심이 주님의 충실한 종으로 일생 동안, 교회와 나라와 가정과 사회를 위해 올바르게 끝까지 지조를 지키며 최선을 다하시다 주님의 품으로 가신 고 정일형 박사님과 그를 떠나보내고 슬퍼하시는 그이 유가족들과 한국의 민주 인사들과 도 여기 모인 저희들을 위해 말할 수 없는 위로를 맞아 주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TOP
『 고 정 박사 삼오제에 』
모 윤 숙
라일락 숲속에 그 몸을 숨기시고
가보시지 않던 길 어이 가셨습니까?
만리 바람 속 억겁에 하늘 길을 이제 아주 떠나시고야 말았습니까?
박사님!
1948년 그 우울한 파리 총회에서
우리 일곱 사람은 한마음이 되어
샹제리제 비오는 길을 당황하여 걸으며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남한의 합법 정부를 위해 투표운동을 하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박사님!
그때 저는 박사님을 정치인으로보다
인도주의의 거목으로 숭배하였고
누를 수 없는 정의의 기사로 우러렀습니다.
항상 가난한 내 정신의 목자로 따랐습니다.
그때 우리는 이 호텔 저 호텔에서
마샬 장군의 더운 커피를 마시며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의 약속을 믿고 나왔지요.

부드러운 음성으로 너그러운 웃음으로
똘레스 장관의 어께를 만지며 호소했을 때
그는 또 박사님께 깊은 약속을 하셨습니다.
또다른 거리로 대표들의 호텔로
터벅터벅 옷을 적시면서도
우리는 똑같이 떨리는 가슴을 조이며 죽음보다 준엄한 결심에 차 있었습니다.

남한이라도 살리자 합법정부를 세우자
서로의 가슴의 뜨거운 맹세를 해가며
이 정열 이 의지로 남북을 합할 때까지
이보다 더 한 고생이라도
뭉쳐서 그때까지 살라
오! 합법정부 승일을 이기던 날
내 옷고름은 눈물에 젖었고
박사님과 따른 대표들의 울먹이던 기억
나 어찌 돌아와서 잊어버린 적이 있었으리까!

무정한 어른들이시여!
그렇게 나를 심부름시키고 지도하시던 선생들이시여!
한 분 두분 가시더니
한 분 남으신 박사님조차
나 하나를 남겨놓고 돌아보지도 않고
어디로 다 사라지셨습니까?
나는 누구를 찾아 대화를 하겠습니까?
또 누구의 다정한 충고를 받아 국제 정세를
이해하겠습니까?
석달 보름동안
배우고 쌓은 덕이 죽음을 무릅쓰고 조국을 지켜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신 어른이시여!
이제 나 혼자 남아 선배님 무덤 앞에 와 서있습니다.
행여나 하여 서울대학 병실에도
몇 번 찾아가 뵈었지요.
그러나 그때의 반려자로 나를 누이같이 보살피던 박사님은
내 추억 속에 영원한 꿈으로 남았을 뿐입니다.

박사님 웃음의 외교
그 신앙의 표정에
포악한 적들도 항상 손을 내밀었고
선량한 양의 음성 같은 부드러움에
원수보다 친구로 대했던 것도 기억합니다.

일곱 분을 모시고
이년이나 철없이 유엔 총회에 따라다녔던 그때의 나를 키워준 어른이시여
정신의 고아보다 더
오월의 깊은 설움 속에 나를 남기고
박사님마저 멀리 가셔야 합니까?
박사님의 사랑하는 짝 태영이가
흐느껴 내 옆에서 울고 있습니다.
그러나 박사님 대신 태영이가
그 지혜와 덕으로 이 나라를 도와가리라
신의 품안에서 영원히 안심하옵서소 박사님!
TOP
『 추 모 시 』
송 현 선생
진남포 앞바다 갈매기
-정일형 박사의 영전에 바치는 노래
1. 일생을 오직 한길
불의와 싸워오신 한국의 양심이라고,
일생을 오직 한길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파수군이라고
아니,
자유민주주의의 노병이라고 하지만,
그 어느 것으로도
님을 부르기엔 부족한 것을

2. 예배당 새벽종을 치던 그 푸른 팔뚝으로
자유의 글발을 쓰고,
항일 투쟁으로 다섯해 옥살이를 할 때의
그 야문 결의와 겨레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조국의 독립과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의 발전과 통일을 염원하던,
님의 가슴에는 늘상
진남포 앞바다 푸른 파도는 자유의 물결로 출렁였고,
유년의 갈매기는
님의 머리 위를 자유의 깃발로 날고 있었다.

3.누가 노병이라고 하는가.
일생동안 이 나라 의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의사당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던 그 사자후를.
의원직을 빼앗기고,
아아, 마지막 공민권마저 빼앗기고 쫒겨 나면서도
‘자유민주주의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압제자의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를 꽂던 그 뜨거운 자유혼을
그 서슬이 시퍼런 정의의 칼날을
누가 노병이라고 하는가.

4. 일제의 모진 고문과 압제자의 독선의 총구 앞에서도
조국의 독립과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의 발전과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던 님은
이제,
겨레의 가슴속에 조국의 하늘 위에
영원히 날고 있을
자유의 푸른 갈매기인 것을.
TOP
『 금연 정일형 박사 3주기 추모 강연회 중 』
김 대 중 선생

사람은 누구나 죽은 후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역겨운 생각으로 회상하게 되고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무관심으로 대하게 되고 또한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날이 갈수록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게 됩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뿐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정일형 선생을 생각할 때 한없는 존경과 사랑과 그리움으로 대한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 모인 여러 계층이 분들이 얼굴을 볼 때 이 많은 각계인사가 모이신 사실 자체가 이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로부터 사람은 죽어서 관을 덮고 나서야 그 평가가 종결된다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사랑하는 정일형 선생, 우리가 그렇게 존경하고 따랐던 정일형 선생의 관을 덮은 지 3년이 되었습니다. 과연 정일형 선생을 우리는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인가? 나는 정 선생을 정치인으로서, 신앙인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세 가지 분야에 걸쳐서 말씀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나는 정일형 선생은 정치인으로서 일관된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했고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자기의 신명을 기울이고 온갖 정성과 노력을, 그가 바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쳤을 뿐만 아니라 이것을 지키기 위해서, 이것을 되살리기 위해서 그는 자기 자신을 희생시킨 순교자였습니다.

그는 대한민국 건국 당시 유엔에서의 승인을 얻고자 분골쇄신의 노력을 다하신 것이 대한민국에 대한 그분의 충성과 공헌의 시발점이었습니다. 이어서 1952년의 정치파동 때 정일형 선생께서는 당시 야당의원으로서 이승만 박사의 부당한 탄압에 항거하다가 마침내 이 다시없는 자유민주주의의 신봉자가 국제공산당으로 몰려가지고 수난을 겪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이 분은 그 당시 유명한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전쟁중이기 때문에 우리는 국민에게 지킬 것을 주기 위해서 더욱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한다.’ 이와 같이 황금같이 빛나는 말씀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3대 국회에 들어와서 이승만 박사의 영구 집권을 위한 사사오입이란 수학의 원리마저 무시한 파렴치한 개헌, 보안법 파동, 여기에서 정일형 박사께서는 야당 의원의 선두에서 투쟁하시다가 많은 수난을 겪은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5.16이 나고 정치활동이 재개되자 민주당 정권의 수석국무위원으로서, 국민이 준 정권을 지키지 못한 그 책임에 대한 자책감에서 정일형 선생께서는 민주당 재건에 앞장 섰으면 6대 국회이래 원내에서 다시 한번 자유민주주의 투쟁의 지도자로소 그 거대한 모습을 나타내시고 우리를 영도해 나갔습니다.

3선 개헌에 반대하시고, 유신에 반대하시고, 그리고 박 대통령 독재에 대해서 일관해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습니다. 이 어른은 자유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권위나 자존심도 무릎 쓰고 불초 이 사람이 약관 40대로써 대통령 후보가 되었을 때 기꺼이 저를 위해서 사무장이 되어 주셔가지고 야당의 승리를 위해서, 자유민주주의의 희생을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셨습니다. 저를 위해서 권력자의 미움을 받아가지고 본댁이 밤사이에 불탄 것, 이것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 당시 정보 기관에서는 정 박사 댁에다가 불을 지르고 파렴치하게도 그 이유는 정 박사 댁에 고양이가 불을 질렀다고 만고에 없는 부끄럽고 수치스런 거짓말까지 한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유신이 선포되고 해외에서 유신 반대를 하다가 제가 납치되어서 국내로 돌아온 것을 여러분이 아십니다.

박 정권은 두 번이나 해외에서 저를 죽이려다 못 죽이고 국제 여론의 압력에 의해서 저를 부득이 한국으로 데려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끝내 박 정권은 중앙정보부가 계획했던 것을 부인하고 그 범인을 알 수 없다는 방향으로 심지어 김대중 자신이 자기의 인기를 위해서 스스로 조작했다는 방향으로 이렇게 국민을 속이고 있을 때, 국회의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유신 국회의 그 숨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누구도 감히 여기에 대해서 말을 못하고 있는 그대 정일형 박사는 분연히 단상에 올라가 ‘김대중의 납치사건은 중앙정보부가 했다는 것은 천하가 아는 사실이다. 이것을 부인하는 것은 마치 한편 손을 가지고 저 공중에 있는 태양을 가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폭탄적인 발언으로서 한국의 국민뿐 아니라 전세계를 경악하게 했습니다. 아니, 경악한 것은 전세계뿐이고 한국 국민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보도가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 정일형 선생께서 이러한 발언을 할 수 있는 그 계기가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여러분은 상상할 수가 없을 겁니다.

야당 지도부에서는 그일에 대해서 발언을 억제하고 중지할 것을 강요하고 여당에서는 온갖 방법으로 협박하고 사정을 했습니다. 이런 것을 무릅쓰고 영부인 되신 이태영 선생과 둘만이 협의해 가지고 이 폭탄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전세계의 언론이 이것을 대서특보하고 용기있는 정치인, 독재에 단연히 항거하는 정치인으로서 이 어른의 행동을 보도한 것을 그 당시 나는 모든 외지를 읽었던 만큼, 이것을 지키기 위해서 정일형 박사께서는 그러한 모험적인 발언을 단행했던 것입니다. 정일형 선생의 이러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투쟁의 가장 정점은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에의 참여입니다. 그 당시 18명이 여기에 참가했습니다.

재야정치인 혹은 신구교의 성직자, 신학자, 대학교수, 여성지도자 여러분이 참가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가 일하던 자리를 현직으로서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오직 정일형 내외분만이 한 분은 현직 국회의원이요, 한 분은 현직 변호사였습니다. 처벌되면 처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국회의원과 변호사직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안하면서 우리의 견해에 반한 권력과 싸우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하다 못해 조그만 구멍가게라도 하게 되면 세무사찰과 은행문제 등 여러 가지가 겹치기 때문에 권력과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이 두 뿐께서는 비장한 결심으로 현직 국회의원으로서는 유일하게, 이 3.1구국선언에 참가하셔가지고 재판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망침내 남편은 의원직을 잃고 부인은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습니다. 이러한 커다란 희생을 서슴없이 후회없이 우리 국민을 위해서 두 분이 내놓으셨다는 사실을 생각할 대 나는 여기서 여러분과 더불어 깊은 감사의 정으로 깊은 경모의 정으로 그 두 분을 회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일형 선생께서는 국회의원직을 빼앗기는 날 국회에서의 마지막 발언을 하시면서 아까 여러분이 여러 번 인용한 바와 같이 ‘자유민주주의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이 노병은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욱 달려나가기 위해서 이제 민주투쟁대열에 나아간다.’ 이러한 장대한 선언을 하시면서 내가 죽었을 때 내 묘앞에 서 있는 십자가에 ‘자유민주주의의 노병 정일형’ 이러한 비명을 새겨달라고 말씀하시면서 의사당이 마지막 고별연설을 마치셨습니다.

그 분은 자유민주주의만이 우리 국민에게 자유와 정의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기에, 그 분은 너무나 우리 국민을 사랑했기에, 너무나 우리가 압제를 받고 있기 때문에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치고 박정권의 독재와 정면으로 싸우는 그러한 모범을 우리에게 보였던 것입니다. 또한 그 분은 말하기를 자유가 있어야만, 오직 국민에게 지킬 가치를 주어야만 국민은 비로소 공산주의를 반대할 이유를 실감하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오직 민주주의적 자유를 주어야만 국민은 목숨을 바쳐서 그것을 지키기 때문에 튼튼한 안보가 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반공은, 진정한 안보는 그것을 빙자해서 국민을 억압하고 반대하는 빨갱이로 몰고 국민의 숨통을 누르면서 모든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손에 가지고 있는 그것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귀중한 보물을 국민의 손 안에, 가슴속에, 안겨주는 것, 이것만이 진정한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것이고 안보를 이룩하는 일이며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적 자유요, 인권이요, 정의라는 것을 주장한 그 분의 말씀은 오늘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보다더 생생하고 고귀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 우리는 그 분의 말씀을 치고의 교훈으로 삼고 앞으로도 그 분의 정신을 받들어 나아가야 한다고 나는 믿고 도 믿는 것입니다.

둘째로 신앙인으로서의 정일형 선생은 눌린 자의 편에 서신 예수, 그 예수님의 충실한 사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예수의 일생은 무엇이냐? 많은 해석과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러나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의 일생은 억눌린 민중의 자식으로 태어나, 가난한 목수의 자식으로 태어나 30세까지 스스로 가난한 목수로, 생활하시고 그 후 3년의 공생활에 있어서도 역시 눌린 민중들, 그 당시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소작인 날품팔이, 창녀, 세리, 문둥이, 떠돌이 등 이런 사람들을 벗으로 그 공새활을 일관했습니다.

예수님이 말하기를 굶주린 자, 헐벗은 자, 병든 자, 감옥에 갇힌 자, 집 없는 자, 그리고 나그네, 이런 이들에게 따뜻하게 해 주고 그를 보살펴 주는 것이 바로 자기에게 따뜻하게 해주고 그를 보살펴 줄 것이고 그들에게 박대하는 자기 자신을 박대하는 자로 알고 지옥 영원의 불 속으로 떨어지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눌린자에게, 묶인 자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기 위하여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일생을 통하여 한 번도 정치에 개입한 일은 없었지만 억압받는 사람을 위해서 이를 비판하고 백성을 위해 나쁜 정치와 정면으로 도전해 싸우시다가 예수님은 정치권력에 의해서 정치법 그 중에도 가장 중조인 내란선동자로 몰려서 결국 십자가에서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 당시의 로마제국이란 것은 단순히 치안유지와 세금 받아가는 것뿐이고 모든 백성의 지배는 율법에 의해서, 산해드린이라는 유태인 의회가 도맡아서 했습니다. 이 유태의회의 지배자들은 당초에 하느님이 백성을 위해서 만드신 안식일제도라든가 정결례를 오히려 백성을 억압하고 백성을 괴롭히는 그리고 백성 위에 군림한 데 악용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의 사두개파, 바리새파 율법학자들의 지배층이 율법을 악용한 데 대해서 이를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위선자들의 행동으로 규탄하셨습니다. 성전에 봉헌하는 예물제도를 악용해서 백성을 착취한데 분노하셔서 일생에 단 한번 폭력을 휘둘러서 환전상의 돈궤를 뒤엎고 양 또는 비둘기 상인들을 쫓아내셨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억압된 자의 편에 서서 싸우셨던 그는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것입니다.

예수의 충실한 제자로서의 정일형 선생께서는 일제하에서 억압받는 우리 국민을 위해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5년이란 긴 세월을 감옥 속에서 고생하셨습니다. 해방 후에도 이승만 독재, 박정희 독재 이 두 독재정권에 대해 자기가 내놓을 수 있는 마지막까지 다 내놓으면서 항거하고 투쟁했습니다.

그 양독재정권에 의해서 눌림 받고 착취 받는 고통당한 자 편에 섰습니다. 그리하여 3.1 구국선언 이후 마침내 부인과 더불어 십자가에 못박히듯이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되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기독교 교회가 이렇게 고난 받는 민중의 현실에 동참하고 그것을 억압하는 자들과 싸우지 않고 이 세상 사는 것 아무것도 아니니까 참고 견디다 내세에 천국에나 갈 준비를 하라고 그래서 민중을 잠재우는 교회는 예수의 교회가 아니라 예수를 파는 하나의 기독교 상점에 불과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여러분과 더불어 확실히 믿기를 또 여러분과 더불어 하나님께 호소하기를 고난 받는 자의편에 서서 일생을 바친 우리 정일형 선생은 반드시 지금 그분의 오른편에 앉아서 천국의 영광을 확실히 믿는다는 것을, 정일형 선생이야말로 진실한 이 나라의 기독교 신자의 모범이었다는 것을 여러분께 말하면서 하나님이 저의 이러한 말을 결코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인간 정일형 선생은 참으로 인자한 어버이였습니다. 이미 말한대로 훌륭한 부인과 더불어 아마 한국에선 누구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행복하고 모범적인 가정을 만드셨습니다. 부인 이태영 선생은 우리나라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권운동가요, 오늘날 전세계가 존경하고 숭앙하는 여권지도자인 것은 그 분이 받은 수십 개의 국제적인 상으로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정일형 선생은 부인을 지극히 사랑하고 도왔고 또 부인은 정일형 선생을 지극히 사랑하고 도왔습니다. 이 부부야말로 우리가 가장 부러워하고 따르는 사랑의 결합의표본이며 내조와 외조의 결합의 표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여기 나와 계시는 자제분들을 다 훌륭하게 키워서 따님들은 남이 부러워하는 훌륭한 남편들을 맞이하였고 아들 정대철 박사는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장래가 촉망된 훌륭한 정치인으로서, 이날의 장래를 짊어질 만한 인재인 것입니다. 지난번 선거 대는 불행히도 낙선을 했지만, 저도 네 번쯤 낙선해 봤으니까 압니다마는 이 낙선이라는 것은 제 경험으로서는 상당히 좋은 약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낙선은 우리 정대철 박사에게 장래의 대성을 위한 하나의 좋은 수양의 기간이 되기를 바라면서, 정일형 박사님께서도 지하에서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정일형 박사님께서도 지하에서 그렇게 되기를 바라실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정일형 선생께서 우리 동지들을 얼마나 사랑했는가, 생존해계실 때 우리와 같이 냉면집에 가시는 것을 그렇게도 좋아하셨고 또한 나 같은 후배를 키우기 위해서 대통령지명 권유 피켓까지 들고 대회장 앞에 서주신 그러한 가지가지 은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정일형 선생의 부고를 들었을 때 옥중에서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5.16후의 이 나라를 위해서 살아온 정치인을 이야기하면 정구영 선생, 홍익표 선생, 그리고 정일형 선생, 이 세 분이야말로 우리가 깊이 존경하고 기억할 훌륭한 선배들이라고 적어 보낸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많은 정치지도자들이 청년때와 장년 때까지 잘 가다가 나이가 들면 잘못되는 수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어른은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자기들의 지조를 일관하고 자기들의 신념을 일관했습니다.

그리고 온갖 유혹을 박차고 모든 것을 국민에게 바치는 데에 조금도 후회 하지 않는 그런 생활을 했습니다. 이 분들은 이미 이 세상에 없지만 내가 볼 때에 백 년을 두고 혹은 천년을 두고 이 나라 역사에 정치인의 귀감으로서 남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인간은 어차피 한 번은 죽습니다. 문제는 특히 공인은 바르게 사느냐, 일시적인 권세나 유혹에 못 이겨서 자기의 양심을 포기하는냐 하는 것입니다.

결국 승리자는, 행복한 사람은 무엇이 되기 위해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양심에 충실한 어떻게 사느냐, 어떻게 바르게 사느냐, 내가 지금 국민 편에 서 있느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정일형 박사는 대통령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되고 싶어 하셨지만 야당당수도 못되었습니다. 국회의원 8선을 지냈지만 하다못해 부의장도 못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정일형 박사는 한 번도 국민의 곁을 떠난 일이 없고 한 번도 독재에 양보한 일도 없고 한 번도 그 자세를 흐트러뜨린 일이 없기 때문에 정일형 박사는 어떤 대통령보다도 어떤 국회의장보다도 어떤 야당 당수보다도 그 정치생활은 가장 큰 성공을 한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앞으로 영원히 우리 국민이 존경하고 기억할 위대한 정치인이었다고 나는 여러분에게 단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늘 정일형 박사를 추모하는데 있어서 내가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여기에 모여서 이러한 추모의식을 올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 박사의 뜻을 받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 박사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우리가 갈 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유민주주의를 말살하는 독재정치, 국민의 자유와 창의와 인간이 존엄성을 말살하는 독재정치를 종식시키고, 이 나라에 자유가 들꽃같이 만발하고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고, 통일의 희망이 아로 새길 수 있는 국민의 나라, 국민이 주인이 된 나라, 국민에 의해서 좌우되는 나라, 군사정권이나 독재자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는 나라 그러한 자유민주주의적인 나라를 구현 것만이 이 어른의 넋을 위로하고 그 뜻을 받드는 길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민주주의만이 공산당을 막을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만이 진정한 안보가 됩니다.

보십시오. 서독이 분단국가로서 민주주의 하기 때문에 동독이 감히 손을 못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안하면서 공산당과 싸운 나라는 모두가 망했습니다. 오늘의 입장에서 조명할 때 정일형 박사의 자유민주주의는 그 분이 살았던 세대에 묶인 정치신조로서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독재체제 아래 있는 오늘의 우리에 있어서는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나 반공과 안부를 위해서나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나 이 어른이 말씀한 자유민주주에 대한 그 신념과 주장을 아직도 우리에게 100%의 당위성을 가지고 그 실현을 이룩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은 그 분의 한 제자로서 또 가장 사랑을 받던 한 후배로서 이 자리에서 그 분 앞에 맹세하고 도 여러분에게 호소할 것은 우리 모두가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 민주주의에 모두가 참여해야 합니다. 백성 민자, 임금 주자 백성이 주인입니다. 주인이 잘나야 나라가 잘됩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우리 모두가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서 이 어른이 우리에게 보여준 국회의원도 내놓고 부인의 변호사도 내놓은 그러한 희생을 본받아 가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 우리가 헌신해야 하겠습니다. 내년 이때에 이 어른 앞에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커다란 희망과 더불어 이러한 4주기 추모식을 영광과 기쁨속에서 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여러분과 더불어 미망인되시는 이태영 선생, 그리고 그 후계이신 정대철 박사, 기타 모든 가족에 대해서 진심으로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 이 어른의 명복을 빌면서 저의 추모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TOP
이용약관 ㅣ 개인정보보호정책
서울특별시 중구 다산로 135 (2층) / TEL : 02-2266-3660 / 법인번호 : 110-82-05797 / FAX : 02-2271-2710
COPYRIGHTⓒ2008 정일형·이태영박사 기념사업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