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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어오신길 / 출생 및 성장기 / 학업의 꿈 / 여성 사법고시 합격자 / 법률상담소와 가족법 개정운동 ]
이태영박사는! 1914 ~ 1998년 12월
본관 광주
아호(雅號) 백인당(百人堂)
국적 한국
활동분야 법조계, 여성계
출생지 평북 운산
주요수상 막사이사이상, 유네스코 인권교육상, 국민훈장 무궁화장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세우고 여성에 대한 불평등과 인습에 맞서 싸운 여성 운동가이다.
1914년 평안북도 운산에서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평양정의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 이화여전 가사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평양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중 정일형(鄭一亨) 박사와 결혼하였다.
1946년 32세 되던 해 여성으로는 최초로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였고, 6년 뒤인 1952년에는 사법고시에 합격한 첫 여성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 이승만이 야당 인사인 정일형의 아내라는 이유로 판사임용을 거부함에 따라 한국 최초의 여성변호사가 되었다.

1956년에는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전신이 된 여성법률상담소를 세우고 10여 년 간 활동하였다. 불우하고 소외받은 여성들을 위한 법률구조기관인 이 상담소는 1966년 8월 가정법률상담소(사단법인)로 이름을 바꾸어 여성뿐 아니라 남녀 모두의 권익을 위한 인권기관이 되었고, 1976년에는 한국가정법률상담소로 다시 이름을 바꿔 공익법인이 되었다.
이 상담소에서 벌인 사업 중 하나인 '가족법 개정운동'은 1989년 이혼여성의 재산분할청구권을 인정하고, 모계·부계 혈족을 모두 8촌까지 인정하도록 하는 결실을 보았다. 또한 1974년 11월 민주회복 국민선언, 1976년 3·1 민주선언 등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믈 보여주기도 하였다.
여성해방운동과 민주화운동 등에 헌신한 공로로 막사이사이상, 유네스코 인권교육상, 국민훈장 무궁화장, 제1회 법을 통한 세계평화상, 제3회 세계법률구조상, 세계감리교 평화상 등을 받았다.
1969년 55세의 나이에 서울대학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63∼1971년에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아 법정대 교수 겸 학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남녀평등의 헌법정신이 민법에서도 지켜질 수 있도록 평생을 바쳐 투쟁한 사람, 바로 그녀가 일평생을 여성인권을 위해 헌신한 이태영 박사님이다. 그녀는 가부장적 봉건 잔제로 인해 설움과 압박이 심했던 한국 여성의 현실에 정면으로 도전, 여성인권운동의 새 장을 열었다.
여성의 권리, 인간의 권리, 나아가 진정 진실과 소신을 당당히 밝혔던 이태영, 그녀는 시대의 양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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