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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영박사님은 1914년 9월 18일 평안북도 운산군 북진읍 진동마을에서 아버지 이흥국씨와 어머니 김흥원씨 사이에서 2남 1녀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경의선 철길에서도 이백여리 떨어진 두메였지만 일찍부터 개화의 물결이 출렁였다.
이태영박사님의 아버지는 운산에서 광산을 했다. 당시 운산은 아시아 제일이라던 금광 때문에 선교사, 중국인, 광산기술자 일본인들로 하여 묘한 국제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태영박사님의 고향은 비교적 서양문물들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 기독교가 활발하게 전파될 수 있었다. 이태영박사님의 집은 일찍부터 개화의 물결을 받아들였고 교회도 열심히 나갔다. 이태영박사님은 태어나자마자 영아세례를 받았다.
이태영박사님이 태어난지 이태 후에 아버지는 지하 갱도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버지는 탄광 사업으로 벌어들인 수입 전부를 만주에서 활동하던 애국지사들의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해 버렸기 때문에 남긴 돈은 거의 없었다. 그녀의 기억에는 아버지에 관한 기억이 모두 어머니에게 전해들은 단편적인 얘기뿐이었다.
아버지를 여윈 어머니는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이 주신 시련으로 믿으며 어렵고 힘겨운 살림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무척 활동적이었고 재주도 뛰어났으며 기독교에 의해 개화되어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보다 남녀 차별을 두지 않고 공부 잘하는 아이는 끝까지 공부를 시켜 주려고 하였다.
그녀보다 열 한 살이나 위인 큰 오빠는 부친이 없는 집에서 아버지 노릇을 했다. 큰 오빠는 철이 들락말락한 그녀에게 ‘너는 커서 변호사나 대의사가 되어라. 고 늘 말했다. 代議士(대의사), 즉 국회 의원 되라고 한 큰오빠는 어린 동생을 항상 포근히 감싸 주고,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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