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사랑하고 존경해온 이태영 박사를 영결하는 이 사회장의 장례 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하여 처음에는 무척 주저했습니다. 그러나 이태영 박사와 사귀어온 사람들 가운데 가장 깊이 있게 사귀어 온 사람이라는 이유로 제게 이 직을 맡아달라고 했을 때, 만일 고인이 세상 떠나기 전에 장례식에 대한 유언을 했다면 저를 위원장으로 지명했을 것이라 믿게 되어 이 과분한 직분을 맡게 되었습니다.
고인과 수 십 년 간 교분을 가져오면서 저는 자주 “누님”이라고 부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누님이라는 가족적 관념을 가지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큰 인물이었습니다. 그분은 가슴속에 우리 민족 전체와 나라를 깊숙한 곳에 끌어안고 사시는 분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분을 ‘이태영 박사님’‘이태영소장님‘하고 부를 때 어딘가 어색한 느낌을 가진 것은 제가 가진 그분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을 그런 칭호로
만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 십 년간 무어라고 불러야 좋을지 헤매다가 오늘 영원히 그분을
여의게 되었습니다. 이태영 박사님이 세상을 떠난 이후 각 신문에서 ‘여성계의 대모’ ‘인권변호사’또는 ‘한국의 처음 여성 변호사‘이런 제목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그것은 조금도 과장된 것이 없는 분명한 사실이고 또한 그가 살아온 동안에 가장 큰 업적의 하나임에 틀림없지만 그러한 좁은 의미로 그를 다 표현할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태영 박사님에게는 보다 훨씬 넓고 놓은 호칭이 있어야 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그를 존경하는 많은 사람들도 같게 생각할 것입니다만 제가 고인을 좋아한 여러 이유 가운데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분의 인격이었습니다. 아주 예리하고 냉철한 판단력을 가지고 평생 옳은 것이 무엇인지 찾아서 공부하는 지성과 시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건이 없는 사랑을 하고 사회의 불의를 보면 정의를 위해서 활화산같이 타오르는 정열, 그러면서 하겠다고 작심을 한 것은 어떤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과감하게 실천하는 의지력을 그분은 가지고 계셨습니다.
지와 정과 의를 골고루 갖춘 그분의 인격을 우리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성차별과 싸우는 여성계의 대모 임에는 틀림이 없었지만 그분은 일제시대 남편 정일형 박사의 감옥살이를 정성스레 뒷바라지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 떠나던 그 날까지 그 남편을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하는가! 곁에서 보면서 또 자녀들에게 어머니로서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던가를 잘 보았기 때문에 정말 현양처의 모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가정에 안주하는 한 아내나 어머니가 아니고 이 사회에 널리 있는 힘 없는 사람들 그리고 자유를 잃고 고통 당하는 민족 전체를 그의 품안에 안고 온 몸을 바쳐 사랑했기 때문에 저는 매우 존경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까운 거리에서 그분을 지켜보면서 특히 70년대에 이 분을 한 번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 모신다면 누적된 우리 나라의 정치적인 폐습을 청산하고 꼭꼭 막혀버린 남북간 평화통일의 길을 열 수 있을 것 이라 생각했습니다. 만일에 그 길이 열린다면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살아온 저는 한 번 파계하는 심정으로 그를 대통령으로 모실 것을 추진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이러한 저의 꿈이 싹트던 때에 불행하게도 유신헌법이 선포되면서 그 뜻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74년의 민주회복국민회의, 가족법 개정운동 등 이런 모든 데에 투신하는 그분을 보고 참된 그 심성을 마음 속 깊이 존경해 왔습니다.
제가 본 고인의 이러한 위대한 모습을 잘 나타낸 것 하나가 1971년 4월 18일 남산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후보를 위한 그 우렁찬 지지연설입니다.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고인은 정일형 박사와 함께 나라를 위해서는 김대중 대통령을 만들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노력해 왔으나 그가 그처럼 숙원하던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던 때 그는 이미 깊은 병에 걸려 그 사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가 세상을 떠난 것은 참으로 한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수 많은 차별과 갈등, 동서간에 남북간에 가지고 있는 이 장벽들을 허물고 참된 민족의 화해를 이루어야 하는 때 그리고 남과 북의 통일이라는 역사적인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데 그분이 저 관 속에 누워 있다는 것은 참으로 견딜 수 없이 슬픈 일입니다.
선두에서 이 일들을 헤치고 나가야 될 그리고 이 역사의 한가운데서 ?을 통하는 연설을 계속해야 될 분이저 관 속에 갇히고 땅 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슬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은 세가지 형태로 살고 간다는 생각을 합니다.첫째는 창조적인 삶,모든 것을 개혁해가고 모든 것을 창조해가고 보다 새롭게 만들어 가는 그러한 창조형의 삶이 있고, 둘째는 있는 것을 잘 보전하면서 살아가는 보전형의 인생, 그리고 항상 사회에서 파괴적인 역할만을 하는 삶, 이런 세 종류의 삶이 있습니다. 고인은 분명하게 창조형의 삶을 사신 분이라는 것에 한 사람도 이의가 없을 줄로 압니다. 그런데 창조형의 인간이라는 것은 그가 하던 일이 그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특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그분은 우리 곁을 떠나지만 그의 자손들과 그리고 그의 동료들과 그의 후배들과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그분은 함께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21세기의 문턱에 선 조국이 정치를 보든 경제를 보든 사회 전역에 탐욕의 탐욕으로 썩어가고 있는 바로 여기에서 우리에게 정말 새로운 샘터가 필요합니다. 우리들이 이러한 샘터를 정진하다가 어느 날엔가 이 세상을 떠나는 때에 그분을 만나 그 동안의 모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분의 부음을 듣고 두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첫째는 유명한 의사였던 엘리자베스 로스가 쓴 ‘사후생’이라는 책에 나오는 사람이 죽어 저 세상에 가면 제일 처음 살아있을 동안 사랑한 사람들이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만나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이태영 박사님이 그처럼 사랑하고 그처럼 위허며 함께 살아오던 정일형 박사를 만나겠구나하며 그가 그처럼 사랑하던 먼저 간 많은 사람들을 그가 활짝 웃으며 만나는 장면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는 사도 바울의 로마서 8장 38절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즉음이나 삶이나 현재의 일
이나 장래의 일이나 그 밖의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은 끝나는 날이 오지만 결코 끝나지 않는 것은 사랑입니다. 모든 것은 죽음으로 끝맺지만 죽음을 이기는 힘은 오직 사랑인 것입니다. 저는 지금 먼저 간 사랑하는 분들과 만난 바로 그분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이 자리에 모인 우리를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이 땅에서 그를 의지하던 사람들, 고인의 뜻을 받들어 그의 사랑을 계속해서 이어갈 사람들, 30여 명의 그를 통해 태어난 자손들뿐 아니라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함께 모이고 사정에 의해서 오늘 오지 못한 이 모든 사람들과 맺은 사랑의 관계는 그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 사회에 창조가 아닌 파괴만 난무하고 이러한 세력들을 진정으로 물리치고 참된 자유와 평화를 창조적으로 건설해 나가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함께 할 일이라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 바로 나의 신앙고백이기 때문
에 우리 모두가 이 말씀을 통해 위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