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태영 변호사님은 그냥 ‘변호사’라는 직함만으로 평가하기에는 너무도벅차는 위대한 인물이시다. 나의 대학시절만 해도 ‘여류 변호사’라고하면 여자 변호사도 있다는 정도의 희소가치 내지 이색적 존재의 뜻으로 들렸다.
그러나 이태영 여사는 ‘여성’이라는 점에서‘이색’이 아니라 변호사의 사회적 역할의 지평을 넓힌 ‘비범’한 선구자였다.
가정법률상담소는 이 박사님의 분신이었고 한국 여성의 지위 향상에 엄청난 공헌을 하였다. 그의 여권운동은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을 각성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평등사회운동이었다.
그분은 변호사로서의 신분과 전문지식을 최대한 활용하여 차별 없는 평등사회의 구현에 헌신하셨다.
1976년의 3 · 1민주구국선인사건 재판에서는 피고인의 몸으로 독재정권을 나무라셨다. 1980년 소위 김대중내란음모사건 때에는 살벌한 군사법정을 압도하면서‘내란음모자들을 위해서 변호를 해 주셨다.
포악무도한 군부탈권자들의 광기 앞에 많은 사람들이 ‘개인안보’의 길로 나
갈 때, 이박사님은 반독재민주화운동의 대열에서 대모의 자리를 지켰다.
내가 감옥을 드나들며 변호사 자격도 박탈당하고 실업자 신세가 되고 난뒤,
이박사님은 참으로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주신 바도 있다. 나는 이태영
박사님 이 변호사란 사실을 같은 법조계 후배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분은 변호사로서 소송사건이나 수임하여 법정을 드나들면서 편하고 귀족
처럼 살아갈 수도 있었을 터인데 여성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역사와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서 일생을 바쳤다. 사서 고생을 하셨다. ‘사서 하는 고생’을
통하여 법조인 · 신앙인으로서의 거룩함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이 변호사님의 명복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