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2월17일은 우리 상담소나 그 소장인 저에게 크나큰 충격을 준 날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이 생을 마치고 떠나가게 되어 있는 것은 만고에 변함없는 진리이기는 하나 우리 이태영 소장이 우리들을 두고 또 그분이 평생의 사업으로 이룩해 놓으신 우리 상담소를 뒤에 두고 홀연히 아무 말씀도 없이 돌아오지 못할 그 길을 떠나셨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좀처럼 믿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분의 생전에 이룩하신 업적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으나 그분의 장례를 사회장으로 모시고 각계각층의 조문객 수가 무려 8천명을 넘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분이 얼마나 훌륭한 삶을 살다 가셨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느 사람은 ‘스스로 지성인으로 자처하는 모든 선량한 시민들이 애도의 정을 표하기 위하여 문상을 왔었다’는 표현으로 그분의 떠나시는 길이 영광스러웠던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분은 선량한 기독교인으로 16년 전에 민주투쟁을 하시다가 타계하신 부군 정일형 박사와 천당에서 반갑게 상봉하셨을 생각을 하면 이제 두 분이 만나셔서 이 세상에서 갖지 못했던 휴식을 가지실 시간이 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분은 부귀와 영광을 얻는 길을 택할 수도 있었건만 평생 가난한 자와 배우지 못한 사람을 위해서 시달리고 학대받는 여성들을 위하여 그리고 여성의 평등과 인권을 위하여 그 일생을 힘들고 어려운 길을 찾아서 의롭게 투쟁하셨습니다. 오늘날 한국 여성의 법적 지위가 실질적으로 향상되고 남녀간의 많은 차별이 철폐되고 여자도 남자와 더불어 정치하고 상속도 받고, 공직 취임도하고 사회의 모든 면에서 평등을 이룩하는데 그분의 공로는 너무도 지대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이제 그분이 닦아 놓으신 바탕 위에서 보다 많은 가정의 평화를 꾀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가정의 평화’ 가 ‘사회의 평화’를 가져오고 ‘사회의 평화’ 는 ‘세계의 평화’를 가져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굳게 믿고 그분의 뒤를 따를 것입니다. 우리들의 힘을 합하여도 돌아가신 그 한분 능력의 몇 십 분지 일 밖에 못할 것을 압니다만 우리들로서는 최선을 다하여 그분이 남겨 놓으신 유업을 계승 발전시킬 것을 굳게 맹세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선생님을 잃어버리고 힘이 빠지고 갈 길을 잃어버리고 헤맨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돌아가신 우리 선생님이 우리 선구자이신 선생님이 우리를 바로 인도하실 것을 확신하며 우리의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이 사람은 선생님이 지명하신 상담소 소장이며 동시에 선생님의 큰사위입니다. 저는 선생님이 병환 중에 계시는 동안 또 마지막 입원하시고 운명하시는 시간까지 지켜본 한 사람으로서 우리 선생님이고 장모님이신 선생님이 이 세상을 위대하게 살다 하직하시고 이제 영생의 길을 떠나신 것을 슬퍼하며 동시에 기뻐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