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영박사 > 추도의글
12월 17일, 우리는 한국 현대 여성사 그 자체인 여성계의 어머니, 겨레의 큰 스승을 잃었습니다. 한국이 낳은 민족의 위인이요, 이나라 여성 인권의 선구자이시며, 애국자의 본보기요, 구원의 여성으로 만인의 가슴 속에 믿음과 정의와 소망을 심어 주신 이태영 선생님! 이제 불러도 대답없는 선생님의 영현 앞에서 저희들은 삼가 머리 숙여 마지막 고별의 인사를 드립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만나면 헤어지고 오면 가는것이, 이 세상의 범연한 법칙이라 하옵니다만, 선생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던 힘없고 눌려 있는 그 많은 여성들을 남겨두신 채, 어찌 이다지도 총총이 떠나실 수가 있습니까! 선생님은 신조의 하나로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법과 인습에 억눌려 우는 한국 여성과 평생 같이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대 법대 최초의 여학생, 최초의 여변호사, 최초의 여성 법학박사,최초의 여성 법대학장 등 “한국 최초”라는 그많은 최초의 화려한 훈장을 지니셨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놓은 지위와 명예, 권력이나 부까지 누릴 수 있는 그 자리를 초개같이 내던지시고, 가장 소외되고, 힘없고, 눌린 서민 대중의 벗이 되어, 그들의 눈물을 닦 아주시고 사랑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시는 일에 80여 고귀한 일생을 바치셨습니다. 여의도 한강변의 붉은 벽돌집,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이렇게 선생님의 피와 땀이 배인 사랑의 결정체로서 이 사회에 남기신 선생님의 고귀한 유산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가장 고질적 인습이며, 문화적으로 헤어나기 어려웠던 가족법을 개정하시느라 30여년 동안 앞장서 강골한 기개로 투쟁하시어 가장 풀기 어려웠던 남녀차별 본산적 제도를 허물어, 이 나라 여성 해방사에 두터운 장을 이루셨습니다. 지금도 눈에 선하고 귀에 쟁쟁이 들립니다. 얼마나 많은 반대자들이 선생님께 폭언을 서슴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선생님은 미동도 하시지 않으시고, 황소 같은 모습으로 자유.정의.평등의 힘은 이러한 폭거를 능가할 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선생님의 또 다른 하나의 괘적은 불의에 눈감지 못하시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습니다. 우리 나라 정치 격동기 험난기에 만난을 무릅쓰고 민주화 운동과 인권운동에 감연히 앞장서 투쟁하신 선생님의 땀과 눈물과 열정은 오늘의 민주화와 인권 향상에 밑거름이 됐습니다. 한국 정치사에서 이론과 실천의 범연한 연계 위에 의리와 원칙의 지조를 지키셨던 야당사의 큰 어른이신 금연 정일형 바사님을 내조하여 정치 도덕적 지조의 표상이 되셨습니다.
신혼기에 독립운동에 연계되어 일제의 옥살이로 투옥 당하셨던 부군 정일형 선생을 대신해서 홀로 되신 시어머니, 자녀들을 부양하고 가정을 지키셨습니다. 또한 남편의 옥바라지를 위해 5년 동안이나 손수 물감을 들여 만드신 누비이불을 머리에 이고 이 집, 저 집으로 팔러 다니셨습니다. 도한 4남매의 훌륭한 아들,따님을 두셨습니다.
생각할수록 선생님은 너무 큰 어른이셨습니다. 부귀영화를 헌신같이 던져 버리시고, 일관된 지조로서 평생을 여성의 인권신장과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시고 ‘하나님과 나라와 남편과 여성’을 사랑하고 섬긴 일생 ‘기도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신조로 사회와 가정에서 모두 여성의 최고를 보여주신 한국 여성사 표상이셨습니다.
그처럼 큰 자리를 차지하셨기에 어느 누군가 선생님이 비워놓은 그 공간을 채울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선생님의 혜안과 통찰력, 가르침이 절실할 때입니다. 한 말씀도 못 남기시고 그냥 떠나십니까! 더욱이나 선생님께서 그토록 염원하셨던 자유 민주사회에서 다시 한 번 우리 민족통일과 여성발전을 위한 횃불을 들어주시지 못하고 이렇게 떠나가시는 것이 못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큰 별이신 선생님께서 영원히 빛을 발하기 위해 이 어지러운 속세를 떠나셨다고 생각합니다.. 남겨진 우리들의 몫은 바로 선생님께서 평생에 걸쳐 이루려고 하셨던 미완성의 민주주의 완성과 통일과 유산으로 남기신 번민하는 여성 인권과 여성발전을 한 단계 뛰어넘을 수 있도록 매진하는데 있을 것입니다.
이제 선생님을 이 겨레에 보내주신 지극하신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선생님께서 그토록 그리워하셨던 정일형 박사님, 고향 평안북도 운산군 북진읍의 뒷동산에 모신 어머님을 기쁨으로 만나시게 되리라 믿습니다.

백년에 한 번 만나 뵐 수 있는 한국 여성계의 거성,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 겨레의 큰 어른이신 이태영 박사님, 경의의 인사를 받으시옵소서, 이제 무거운짐 다 내려놓으시고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평안하게 쉬시옵소서.

1998년 12월 21일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 윤후정 삼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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